일본도 타도중의 하나인 헤시키리 하세베 실물입니다.
바로 위의 사진은 헤시키리 하세베의 복제품이구요~
『헤시키리 하세베(へし切長谷部)』의「헤시키리(へし切り)」는,「(갖다 대고)눌러서 베어내다(押し付けて)」라는 뜻으로, 오다 노부나가를 섬기던 챠보즈[1]가 실수로 그를 화나게 하여 혼날 것이 두려워 찬장 밑에 숨었다. 상식적으로 도검이라는 건 휘둘러야 사람을 벨 수 있을만한 위력이 생기는 물건인데, 헤시키리 하세베는 그저 대고 누르는 것만으로도 선반 밑에 숨은 챠보즈까지 두동강 내버렸으며, 이 극도의 예리함에 만족한 노부나가가 이름을 붙였다는 일화로 유명한 일본도이다.
오다 노부나가에 의해 이름이 붙여지기 전에는 삼 척에 달하는 무명의 대태도[2]였지만 쿠로다 간베에에게 건너가면서 도신을 줄인 결과, 길이 64.84 ㎝의 타도가 되었다. 남북조시대 때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혼아미 가에서 야마시로국(山城国)의 도공 하세베 쿠니시게(長谷部国重)[3]의 작품으로 감정한 것도 쿠로다 나가마사 때부터. 「쿠로다 치쿠젠노카미(黒田筑前守)」가 도신의 앞면에 기입된 것은 에도시대 이전인 모모야마시대의 일. 쿠로다 나가마사(黒田長政)[4]의 명을 받은 혼아미 고에츠(本阿弥光悅)가 새겼다. 칼의 뒷면에는 그의 화압(花押)인 「하세베쿠니시게혼아미(長谷部国重本阿)」가 있다.
헤시키리 하세베가 국보로 지정된 이유로는 지철을 포함한 도신 전체에 흐름이 큰 하몬(刃紋)이 있어서 시노기(칼날과 칼등 사이에 있는 꺾이는 부분)나 무네(棟)까지 흐름을 보이는 '히타츠라바(皆焼刃)'인 것이 가장 크다. 매우 어려운 기법으로 알려져 있어서 제작에 실패하면 칼의 품질을 크게 떨어트릴 가능성이 있는, 일반적으로 검의 끝 부분에만 사용되는 담금질 기법인 皆焼(히타츠라)가 검신의 날 뿐만 아니라 평지·호지·동의 각부에 모두 쓰여서, 하세베 쿠니시게 특유의 다레하몬(垂れ刃紋)이 아름답게 나타난 것이다. 하몬이란 열처리에 의해 칼날에 나타나는 모양을 뜻하고 다레는 어지러운 무늬를 나타내는 말로, 미다레검과 비슷한 특징을 띄고 있다.
현재의 장식은 쿠로다 가의 명도[5] 아타키기리(安宅切)를 본따 에도시대에 꾸며졌다. 하바키는 순금에 다시 순금을 입히고 오동나무 문양을 새긴 금이중동문투조(金二重桐紋透鎺)로, 아타키기리와 닛코 이치몬지, 키이 카네미츠 등 쿠로다가의 보검들은 모두 동일한 하바키를 맞추었다고 한다.
1936년에 처음 국보로 지정되었고, 문화재보호법이 시행된 이후인 1953년에는 신 국보로 지정되었다. 현재는 후쿠오카시의 후쿠오카시 박물관(黒田家御重宝故実)에 명물로 소장되어 있다.
헤시키리 하세베가 처음 제작 당시에 대태도였던 것은 칼날의 휘어짐 등으로 확인할 수 있으나[6] 언제 갈려서 도종이 변경되었느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우선 오다 노부나가의 소유였을 때는 도공의 서명이 지워진 무명도 상태였기 때문에 이 당시에 이미 태도 이하였을 것이란 견해가 일반적이고, 오다 노부나가에게 있을 때 태도였다가 쿠로다 가에서 타도로 된 설과 오다 노부나가에게 있을 때 이미 타도였던 설이 나뉜다. 태도설의 경우 쿠로다 가보(黒田家譜)에 쿠로다 칸베에가 오다 노부나가에게서 '태도 한 자루를 받아(御太刀一腰賜りて)' 돌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쿠로다 나가마사가 혼아미가에 감정을 요청하며 이름을 새길 때 타도명이 아닌 태도명을 새긴 점 [7]을 들어 태도에서 타도로 다시 변경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타도설은 헤시키리 하세베에게 총 4개의 메쿠기아나(目釘孔)가 뚫렸고 그 중 2번째를 제외한 3개의 구멍이 막혔는데, 막힌 첫번째 구멍이 하바키 바로 아래에 위치한 걸로 보아 타도 변경 이후에 뚫린 것인데 쿠로다 가에서 타도로 갈았다면 애초에 사용하지도 않을 구멍을 굳이 뚫었다 막을 이유가 없는 점(헤시키리는 쿠로다 가로 넘어간 이후엔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았고 코시라에도 한 번 교체한 것이 전부이기 때문에 쿠로다에서 여러번 뚫었다고 생각하기도 힘들다), 무로마치 시대의 타도 형식을 취하고 있어 오다 노부나가의 아즈치-모모야마 시대보다 이전에 타도가 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고 있다. [8] 한 마디로 처음 만들어질 때 대태도였고 지금 타도인 것만 확실한 듯(...).
여담으로 2번 항목의 게임의 인기 때문에 후쿠오카 시립박물관의 직원의 말에 따르면 관람객들이 '보러왔다'라는 표현보단 '만나러 왔다'라는 표현을 더 많이 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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